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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은 부친 박태형 선생(1980년 작고)과 모친 김당한 여사(88세)사이의 6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엄격한 분으로, 매섭도록 추운 겨울 새벽에도 아들들을 깨워 운동장에서 체력단련을 시키고, 집안일, 동네청소에 앞장서게 하는 등 ‘근면과 성실’을 가르쳤다.

특히 공직에 나서는 철언에게는 “냉철한 지성, 불굴의 용기, 뜨거
운 가슴을 지니라”는 가르침을 주셨고, 철언이 1993년 신권력의 정치보복 칼날 앞에서도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 “권력이 약자의 육신을 짓밟고 괴롭힐 수는 있겠지만 그 영혼과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고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천둥치는 벌판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이다.

부모와 자식간에 가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모친 김당한 여사와 차남인 철언은 유달리 가까운 사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남자는 친구가 많아야 한다”며 철언의 친구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어 철언의 집은 마치 합숙소마냥 친구들로 득실거렸다. 철언이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어느 겨울 도시락을 날라주다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며 다치기도 했다.
철언이 정치를 시작하면서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열렬한 후원자가 되었다. 철언이 억울한 옥살이를 할 때 ‘혹시 아들의 마음이 약해질까 봐’한사코 면회를 마다하던 어머니...그러나 2심 판결 후의 첫 면회 때 “철언아! ...모두가 성원하고 있으니 용기 잃지말고 건강 지켜라”고 하시며 조용히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 철언은 “엄마! 저는 건강하니 걱정 마십시오”라며 하염없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그 순간은 어머니와 아들사이의 가없는 사랑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17년간이나 대구노인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고, 현재도 적십자 대구할머니 봉사단 회장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사법대학원생 박철언은 친척의 소개로 현경자를 만나게 된다. 유난히 단아하고 예쁜 이마와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하얀 이를 본 박철언은 사랑의 열병에 빠지게 되고, 1970년 1월 10일 흰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두 사람은 평생의 동반자가 된다.

박철언이 서울지검 검사시절, 고기를 사기위해 세 아이를 업고 양손에 끌고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면서 독산동 우시장을 오가던 억척
주부 현경자...박철언이 정치보복을 당하고 감옥에 투옥되면서 그녀의 인생 또한 바뀌게 된다.
박철언이 국회의원직을 빼앗기고 곧 이어 치러진 94년 8.2보궐선거에 남편을 대신해 출마했다. “대구시민만이 박철언을 지킬 수 있습니다. 대구의 본때를 보여 주십시오” 라며 사자후를 토하던 현경자는 13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58.8%라는 압도적 지지로, 차점자에 두 배도 훨씬 넘는 득표로 당선한다.


비록 2년간의 짧은 의정활동기간이 었지만 국정감사 베스트 3(한겨레신문), 베스트 5(한국일보)에 뽑힐 정도였다.

지금은 20년째 해오고 있는 나병환자, 근육병환자 등 불우이웃돕기를 계속하며 조용한 가운데 박철언을 내조하고 있다.

모든 부모들이 다 그렇듯이 맏딸 지영에 대한 박철언의 사랑과 기대는 각별하다. 이화여대를 나오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지영은 “한국 북방정책과 남북한 관계-한국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의 연계성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도 중요한 사회문제나 정치현안이 있을 때면 아버지와 열띤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8.2보궐선거 때에는 수성구의 고산과 대구시내를 오가는 버스에 올라타서 ‘아버지의 억울함과 어머니의 당선’을 호소하던 당찬 젊은이이기도 하다. 보선기간 중 매일 100여 차례 가깝게 버스를 탔으나 기사들이 버스비를 받지 않았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1999년 서울지방법원의 이상원 판사(현 제천지원판사)와 결혼하여 3살의 아들 태현을 두고 있다. 사위인 이상원 판사는 박철언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후배이자, 법조계 후배로 언제나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성실하여 장인과 장모의 마음을 매우 편하게 해준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같은 딸 상영과 사위 최준용

둘째 딸 상영과 막내인 아들 종현을 바라보는 박철언의 눈가에는 항상 미안하고 안쓰러움이 감돈다. 김영삼 대통령 후보와 치열한 투쟁을 벌이던 박철언은 1992년 겨울들판의 나무가 되기를 각오하고 따뜻한 집권여당의 울타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온다.

이때 상영은 미국 뉴잉글랜드 컨저버토리(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한 편이라 항상 부모마음을 졸이게 했던 상영...박철언은 자신의 힘든 공직생활 때문에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한 상영에게 항상 미안하다. 상영은 현재 한양대학교 음대에 출강하고 있으며, 2002년 월드컵 개최 기념 오페라 ‘원술랑’에서 프리마돈나인 진달래 역을 맡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어느덧 헌헌장부로 자란 막내아들 종현

박철언이 두 딸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반면, 하나뿐인 아들 종현에 대해서는 무척 엄격한 편이다. 그러나 자신이 감옥에서 투쟁하는 동안 대학입시를 앞둔 종현이 충격을 받지나 않았을까 은근히 걱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에 입학하여 옥중의 박철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만능 스포츠맨 종현은 2000년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후 현재 동양종합금융증권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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