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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시원하게 말은 했다, 그러나(2005. 4. 11)

시원하게 말은 했다, 그러나

                                                                   박 철 언
                                             (사) 대구·경북발전포럼 이사장


독도문제를 두고 한국과 일본 간에 현해탄의 파고가 높다. 또 미국과도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더 이상 미국과 일본에 치우치지 않고, 이제는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원하게 말은 했다. 툭하면 독도를 두고 시비를 걸면서 과거사를 왜곡하려는 일본을 준열하게 꾸짖어야 한다. 그리고 강국들의 패권놀음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자주자존외교의 의지를 천명하는 것은 후련한 일이다.

그러나 말에는 때(時)가 있고 격(格)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채권자가 채무자가 죽었을 때 문상을 가서 상주에게 빚 독촉을 하면 귀싸대기 맞기 십상이다. 당연히 할 말을 했음에도 때와 격이 안 맞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 가장 큰 소리치고 ‘할 말은 했던’ 대통령은 누구일까?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다. 1953년 반공포로를 석방하여 미국을 곤경에 빠뜨리고, 평화선을 선포하여 이를 넘어 선 일본의 어선들을 억류했다. 그래도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은 찍소리를 못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마치 오늘의 미국이 반(反)테러에 모든 것을 걸고 있듯이, 매카시즘의 반공(反共)이데올로기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과 중국과 맞서고 있는 전초(前哨)로서 대한민국은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 데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니 웬만하면 넘어가고,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편을 들어 주었다.

또 우리나라도 그런 상황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조국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 이제는 어엿한 세계 12위의 경제규모의 중견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미국·일본과 겪는 갈등과 마찰의 근본원인은 우리의 성장에 따른 성장통(痛)이다. 우리가 성장한 만큼 그에 걸 맞는 평가와 대우를 요구하고 있으나, 상대방은 여전히 우리를 자신들의 통제권 아래에 두려고 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다.

반세기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우리의 국력과 위상은 커졌다. 그러나 주변 환경 또한 엄청나게 달라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을 하더라도, 듣는 상대방이 어느 정도 수긍하고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 될 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메아리 없는 외침을 불과할 뿐이다.

할 말을 하더라도 격(格)이 있어야 한다. 끈질기고 차분하게 그리고 상대방의 반응을 보아가며 단계적으로 수위를 높여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가 간의 외교이다. 초장에 마지막 히든카드를 써버리고 나면 그 때부터는 달리 방도가 마땅치 않다. 스스로 선택의 폭을 좁혔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해야 할 말과 외무장관이 해야 할 말과 대변인이 해야 할 이야기가 따로 있다. 얼마 전 노 대통령은 ‘과장급 대통령’이면 어떠냐는 얘기를 했다. 나라 일을 살피고 챙기는 데는 그 보다도 더 치밀하고 철저해야 한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때와 격을 고려하는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2005년에 들어서 노 대통령은 계속 발언의 수위를 높여왔고, 그에 따라 우리정부도 상당히 강경한 자세로 미국, 일본과의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좀 더 긴 안목으로 보면 미국과 일본에 대해 별로 ‘부채의식’이 없는 현 정부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더 이상 예전의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릴 필요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듯이, 오늘의 마찰과 갈등을 어떻게 내일의 보다 성숙된 관계로 발전시켜 나아갈 지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이다. 언론과 시민단체 등 민간부문에서 강하게 소리를 내야한다. 여야 정치권이 나서 좀 거친 소리도 하고 고함도 질러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차분하게 추스르면서 협상을 통해 국익을 챙겨야 한다.

이제는 대통령은 말을 줄여야 한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직접 나섰을 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제는 일단 말머리(話頭)를 던졌으니, 이제는 신속히 국가운영의 중심으로 돌아와 전체를 보며 그 다음에 해야 할일을 구상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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