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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이제 무대를 떠나려 합니다.(2004.3.31)

“이제 무대를 떠나려 합니다”


님에게 올립니다.

저는 깊은 고뇌 끝에 이번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나라가 어지럽고 대구가 참으로 힘든 상황입니다만, 또다시 닥쳐온 엄청난 바람 앞에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이제 무대를 떠나려니 지난 30여년 공직생활의 편린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칩니다.

조국통일과 북방정책을 위해 수 십 차례 유서를 써두고 북한 땅으로 공산국가로 비밀출장 다니던 때의 그 가슴 벅참과 두려움

6.29 민주화선언을 기안하고 제6공화국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었을 때의 감격

여소야대를 극복하고 진보와 보수간 화해의 새 질서를 이루어 낸 1990년 3당 통합의 보람

그 힘들었던 생활체육협의회의 발족과 청소년육성10개년계획

내각제 개헌을 위한 치열한 투쟁과 억울한 옥살이의 그 분노

캄캄한 1평 감옥에서 아내의 8.2보선승리 소식에 눈물겹게 감사했던 그 순간

보수와 진보의 두 번째 화해를 시도한 1997년 DJP연합과 승리, 그리고 배신, 그로 인한 2000년 총선패배와 좌절

이제 이 모든 사연을 가슴에 간직한 채 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도연명은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온다(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環).”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었습니다만, 제 가슴속에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여운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국민대통합」을 이루어 「지속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복지사회를 구현」하여 그 바탕위에 「선진통일시대」를 열어가는 꿈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현대사에 있어서 공과 몫을 서로 인정하고 역사적 대 화해를 이루어, 함께 미래를 위하여 선의의 정책경쟁을 펼쳐나가는「사랑과 멋이 있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보수와 진보간, 지역간, 세대간의 깊어진 갈등과 대립이 하루 속히 해소될 수 있도록 무대에 남아 있는 분들이 애써 주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우리 모두가,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주기 바랍니다.

이 어려운 때 나라의 큰일, 힘든 일을 해 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 무대를 내려오게 되어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밝은 마음으로 가볍게 떠나렵니다.

그 동안 미흡한 저에게 기대를 걸고 성원해 주시던 국내외 많은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이제 저는 야인생활로 돌아갑니다. 저를 낳고 기른 고향에서, 고향민들과 꿈과 아픔을 함께하면서「사랑하고 사랑받는 생활」「조용하게 봉사하는 생활」을 찾고 싶습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내가 그대에게 갈 수 있을까요? 그대 나를 위해 아주 작은 등불 하나 켤 수 있는가요?” (자작시 ‘작은 등불 하나’중에서)

여러분의 이해와 사랑을 기원합니다.


                                                       2004년 3월 31일 

                                                     박 철 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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