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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치열하게 사시다 불현듯 떠나신 아버지

치열하게 사시다 불현듯 떠나신 아버지

                                                                박 철 언(시인/전 정무장관)

“저에게 언제나 냉철한 지성, 불굴의 용기, 뜨거운 가슴을 지니라는 가르침을 주신, 지금은 어쩌면 초라하게 보이는 경산군 남천면 백합공원묘지에 잠들어 계시는 선친(泰자 亨자)의 영전에 삼가 이 작은 책자를 바칩니다.” 1992년 졸저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는 창조 할 수 없다”(고려원 발간)를 펴내면서 책머리에 이렇게 썼다.

그렇게도 강건하시던 선친께서는 내가 검사시절이던 1980년 급성폐렴으로 72세에 타계하셨다. 입원 열흘만이었다. 너무 건강하시어 감기에도 새벽조깅을 고집하시다가 뒤늦게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 회복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어머님과 우리들 6형제는 모두 차마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 열흘 동안 둘째 아들인 나는 꼬박 아버지와 함께 하였다. 중환자 응급실에서 꺼져가는 심장의 마지막 박동 그래프를 지켜보면서, 아버지의 상반신을 내 가슴에 안고서 조용히 눈을 감겨드렸다. 아버지의 유지대로 공원묘지에 모시면서 나는 석공에게 묘석에 “眞하게 强하게 最善을 다하신 님이시여, 고이 잠드소서”라고 새겨 달라고 부탁하였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나에게 두려운 존재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존경의 상징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6․25전쟁이 나고 그 후 몇 년간 우리집은 생계를 위해 닭 수백 마리, 돼지 십여 마리, 염소 몇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염소에게 풀 먹이기, 자전거로 달걀 배달하기는 그래도 할만 했지만 닭똥과 돼지우리 청소는 무척 하기 싫었다. 더구나 집수리를 위해 구부러진 못을 다시 쓸 수 있도록 망치로 곧추는 일은 잘못하면 손가락을 쳐서 다치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지시를 어길 수는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수학여행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오래 쓰시던 낡은 가죽가방 대신에 외가에서 새 가방을 빌려왔다가, 그런 정신상태로는 여행을 가지 말라는 엄한 꾸지람에 밤새 혼이 났다. 출발 직전에야 간신히 용서를 받아 낡은 가방을 들고 여행을 떠나면서 아버지의 엄격함을 원망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우리들을 깨워 반강제로 운동을 시키셨다. 매섭도록 추운 겨울의 새벽산책길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때만 하더라도 오리털 잠바도 방한모자도 두터운 양말도 없이, 기껏해야 검정물들인 미군담요로 옷을 해 입는 게 고작이었다. 바람은 왜 그리 세게 부는지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태연히 우리들을 피난민과 빈민이 몰려 사는 판자촌으로 데리고 다니셨다. 거기에는 대․소변까지 섞인 하수도 물이 미끌미끌하게 얼어붙고 누더기 옷을 걸친 사람들이 시커먼 얼굴로 움막 같은 집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도 너희들과 같은 인간이고 같은 민족이다. 너희들은 커서 이런 사람들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밝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명심해라.” 그때는 선친의 뜻을 깨닫지 못했었다.

4남매의 맏이였던 아버지는 11세에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자 학업을 위해 15세에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셨다. 처음에는 밤낮으로 일만하시다가, 차차 낮에는 일, 밤에는 학교, 그 후 낮에 학교, 밤에는 일 그렇게 전문학교까지 힘들게 마치셨다. 조국으로 돌아와 31세 늦은 나이에 안동 김씨 집안의 어머니(棠자 漢자)와 가정을 꾸리시게 되었다.

그 후 고모부의 큰 염직공장에서 몇 년간 지배인 일을 보시던 아버지께서는 서울로 가셔서 직접 염직회사를 차리고 무역업도 하게 되면서 기업가로서 상당히 성공하셨다. 우리 6형제를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결혼을 할 때는 모두 집까지 사주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버스와 전차를 즐겨 타시고, 모밀국수, 칼국수를 좋아하셨다. 밥상에 반찬이 세 가지 이상 오르면 어머니를 나무라셨다. 한 평생을 검소하게 생활하시며,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셨다.

그렇지만 학교육성회장으로 그리고 불우한 이웃돕기에 큰 돈을 서슴없이 내놓아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반주를 곁들인 기분 좋은 저녁식사 후에는 바이올린을 켜시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황성옛터를 노래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성악가인 둘째 딸 상영이가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로 갈채 받고 있는 것이 할아버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께서는 한평생을 힘들게 사시다가 자식들 덕분에라도 편히 지내실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렇게 홀연히 돌아가셨다.

아버지!
일생을 그토록 치열하게 사시다가 불현듯 떠나버리신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 순수문학 2004. 3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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