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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IMF 환란 10년, 그 그림자(대경포럼지 2007년 12월호)

IMF 환란 10년, 그 그림자

                                                                      박 철 언
                                                            건국대 초빙교수
                                                                  전 정무장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 10년 전 국민들은 흥청망청했고 정부는 그저 수수방관할 뿐이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1997년 11월 21일, 우리 정부는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救濟)금융을 요청했고, 그 며칠 후인 12월 3일 IMF에 경제주권을 내놓았다. 한강의 기적은 옛말이 되었고 국제사회에서 깡통 들고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빚쟁이이다. 우리는 IMF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살자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엄격한 재정긴축과 가혹한 구조개혁을 감수해야만 했다. 실업자 수가 180만 명에 이르렀고 거리에 노숙자들은 넘쳐났다. 피눈물을 흘리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장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정말로 뛰어난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모두가 묵묵히 그 고통을 받아들였다. 앞 다투어 장롱 속 금반지를 꺼내었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마치 90년 전 일제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서 국채보상운동에 나섰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했다.

몸서리쳐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우리는 국가부도위기를 맞은 지 3년 8개월만인 2001년 8월 23일 드디어 IMF 구제금융에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 스스로도 놀랐고 국제사회도 깜짝 놀랐다. 그토록 짧은 기간 내에 빚을 다 갚은 것은 기적 같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민족의 끈질김으로 기적을 이루어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IMF 환란의 길고 긴 터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환란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갇혀있다. 빈부격차는 훨씬 더 커졌다. 돈이 돈을 벌고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면서 어려운 사람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간다. 많은 사람들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서민경제를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다.

IMF 환란의 본질은 무엇일까? 왜 환란의 날벼락을 맞은 것일까? 20세기 말 동서냉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등장한 미국은 더 이상 안보(安保)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지 않았다. 철저하게 경제적 실익에 따라 새로이 관계를 설정해 나갔다.

동서냉전시대 혈맹이었던 대한민국은 적대적 흡수합병(M&A)의 대상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한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우리는 IMF 환란위기를 당했고, 국제금융세력들이 요구하는 신(新)자유주의적 경제운영체제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제 이러한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렵다. 당분간은 좋든 싫든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영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는 IMF 환란 10년을 맞고 있다. 그 10년 동안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그 중에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 것은 바로 민간부문, 보다 정확히 말하면 대기업이 새로운 권력의 주체로 떠오른 것이다. 오늘날의 대기업은 정부의 한 마디에 쩔쩔매던 예전의 대기업이 아니다. 이제는 기업권력이 정부권력을 압도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30대 대기업들의 최대주주는 해외자본이다. 농협과 우리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들의 경우 지분의 6~80%가 외국자본이다.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가 최대의 미덕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주주이익을 최고도로 높이기 위해 애쓸 뿐이다. 그렇다고 왜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느냐고 힐난할 수도 없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환절기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해방 후 근 반 세기 우리사회를 지배해왔던 패러다임이 깨어졌으나, 아직까지 새로운 패러다임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가까스로 국가부도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아직까지는 그 여진(餘震)이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여진조차 떨쳐버려야 한다.

때문에 이번 12월의 대통령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환란 10년을 뛰어 넘어 머지않은 장래에 닥칠 수 있는 외우(外憂)와 내환(內患)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야 한다. 미국과 북한이 새로운 친구가 되겠다고 하는 동북아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안목’과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양극화를 치유할 수 있는 ‘역동적 통합력’의 리더십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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