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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TBC선데이토크 (11월 30일 녹취록)
대구방송 TBC 선데이토크(2003년 11월 30일 방영)


               시(詩)를 쓰는 정치인, 박 철 언 대구경북발전포럼 이사장

                                                       사회 : 남성희 대구보건대학장






남성희: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성희입니다. 어느새 2003년도 한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그동안 뜸했던 사람들의 안부도 궁금하고 지나온 날을 
          돌이켜보며 정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국내외에서 발간된 회고록들이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그 회고록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던 얘기들이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한중수교 비사와 한소수교 비사인데, 
          그중에서 오늘은 한중수교 비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박철언 전장관을 모시고
          그에 얽힌 얘기와 궁금한 소식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요.

박철언: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남성희: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박철언:제가 30년 공직생활 하다가, 3년 반 전 총선에서 낙선하고 그 후 3년7개월간 당도
          탈당하고, 모든 공직 버리고 순수한 무소속 야인이 되서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바드 생활을 하고 있죠. ‘하는 일 없이 하, 바쁘게 바, 드나드는 생활’
          이라서 하바드 생활인데, 백수생활 보다 조금 나은 표현 아니겠습니까?

남성희:말씀은 그렇게 하십니다만은, 하는 일 없이 바쁘게 지내신다는 말이 너무 일을
          많이 하신다는 겸손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사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얘기들이
          강연도 하시고, 연구소도 운영하시고, 많은 일을 한다고 들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 주시면 어떨까요?

박철언:2000년 6월에 미국 보스턴 대학 아시아경영 연구소에 객원교수로 가서 1년3개월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처음엔 2년 예정이었는데, 단칸방 셋방에다 혼자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운전하고 불편한 영어로 생활하기 힘들었고, 게다가 밤에
          더욱 혼자 적막하고 외로워서 1년3개월 만에……. 그러니까, 재작년 8월말에
          보따리 싸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월화수 3일은 서울에서 지냅니다. 목요일 아침에 내려와서
          목금토일 나흘은 대구에서 지냅니다.

     1987년 한국복지통일연구소 설립해, 사회복지문제와 남북통일문제 연구
          서울에서는 제가 15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한국복지통일연구소’를 하고 있는데,
          사회복지 , 노인복지문제와 남북통일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소입니다. 전국에
          회원이 있고 외국에도 후원회원이 있습니다.

          지난해 각계전문가와 대구경북발전포럼 창립해, 대구발전방향모색
          그일 보다가 목요일에 내려와서, 목금토일은 작년에 제가 사단법인 “대구경북
          발전포럼”을 창립했습니다. 각계 전문 인사들 150명이 모여서 대구가 너무
          침체하고 무력감에 빠져 있으니까, 지역에 대한 봉사, 발전방향등 연구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 생각되어 창립했는데, 초기단계이고 후원금도 적고해서 힘들게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틈나면 국내외 특강도 다니고, 세미나도 다니고 이런 하바드 생활이죠.

                        [정 치]

남성희:그러니까, 한국복지통일연구소 이사장님, 또 대구경북발전포럼의 이사장님이
          시군요? 그렇지만 지금 정치에서 떠나셔서 이사장직을 하고 계시지만, 정치에
          오래 몸담고 계셨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남다를 것 같은
          생각이듭니다. 정치를 떠나서, 나무 밑을 떠나서 숲을 바라보고 계신데 멀리서
          바라보는 요즘의 정치 어떻게 보십니까?

박철언:정치를 떠나서 무소속 야인으로 있습니다만, 한때 정치에 몸을 담아왔던
          사람으로서 참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국민들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있어
          정치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정치나 정당이 국민들로
          부터, 실망에서 이제 절망으로 갔다가 분노, 국민들이 욕설하다가 요즈음은 무관심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게 아니냐 하는 겁니다. 사실 미움이나 증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 아니겠습니까? 

     정치는 국민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더 잘 살 수 있게 만드는 것
          저는 정치라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좀 더 잘 살 수 있게 하는
          밝은 사회’를 만드는, 그런 게 바른 정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분배정의도 잘 해나가고, 치안을 잘하고,
          국가안보도 튼튼해서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누가 더 더러우냐!’ 이걸 가지고 서로
          삿대질 하면서 극한투쟁을 하고, 민생을 외면하고 있으니까… 정말 분노에 찬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반성하고, 정치권이 새 출발해야지 않느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성희:정치에 대해서 많이들 얘기합니다. 구시대 정치는 청산해야 된다, 깨끗하고 투명
          해야 된다고 말들은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요즘만 해도 불법대선자금
          수사에다, 대통령의 특검거부권 행사다, 또 여기에 대응해서 한나라당 대표의
          단식투쟁이다…,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정국이 얼어붙고 있잖습니까. 민생이
          뒷전인 이런 정치는 사라지고, 앞으로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정치가 정말 불가능한
          걸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국민들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깨끗한 정치해야
박철언: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깨끗한 정치를 해야 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도 우선 제도를 바꾸어야 됩니다.

          예를 들면, 여야가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나오자, “지구당을 폐지하고 완전
          선거공영제 하겠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지구당을 폐지해 봤자 사조직을 만들어서 탈법적 ․ 음성적인 불법, 타락, 금권
          선거판이… 제가 보기에는 재현된다고 봅니다. 또 완전 선거공영제라 하는데,
          전부 국민혈세로써 다 하겠다는 것도 지금 정치권이 국민들한테 이렇게 절망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상당히 무리입니다.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어야 합니다. 선거구가 대폭 넓어지면 돈을 풀기도 어렵고, 요구하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수백 명의 유급상근직원이 근무하는 중앙당을 대폭축소하고
          국회중심의 정책정당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경륜과 용기가 있는 인물이 깨끗한 정치하면 국민사랑을 받을 수 있죠.



               [대구의 희망과 미래]

남성희: 서두에서 말씀 드렸지만은 대구경북발전포럼을 운영하면서 대구지역의 발전을
           위해 무척 고민하고 계신데, 박 이사장님께서 현재 우리 대구에서 해결해야 될
           시급한 문제는 어떤 걸 꼽으시겠습니까?

     대구의 시급한 과제-경제회복과 자신감회복
박철언:크게 두 가지죠. 하나는 경제를 회복해야죠. 두 번째는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는
          것입니다.

          대구경제 현황은 말씀드리기조차 송구스럽지만은, 주민총소득이나 주민들의
          총생산은 전국의 최하위 아닙니까? 거기다 실직율, 특히 청년실업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고, 어음부도율은 0.5%로 전국평균보다 3배나 높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있죠.

          때문에, 뒤늦었지만 최근에 한나라당 의원들과 열린우리당측에서 대구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여러가지 안을 내놓고 있는데, 바람직한 일로 보고, 좀
          늦었지만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합심해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우리의 무력감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가 주인인 정당도 없는데다가
          5~6년 계속 한쪽만을 찍어 봤자, 대구경제는 계속 침체하죠. 그러니까, 이제는
          앞으로 대권을 가져올 수 있는 아니면 야당지도자라 하더라도 조금 당차고 대찬,
          감옥에 가더라도 할 말하고, 대구경북을 위해서 뺏어올 것은 뺏어오고, YS나
          DJ시절에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까. 좀 그런 강력한 야당지도자, 이런 새로운
          구심점이 마련 돼야 하지 않느냐 생각됩니다.

남성희:네, 말씀 듣고 보니까, 참 희망적인데요…
          사실 IMF경제위기 이후에 좀처럼 이 경제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역민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박 전장관님처럼, 국정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 지역의 인재들, 그리고 야당의 지도자들이 힘을 합쳐서 우리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한다면, 희망을 가져볼 만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데요. 어떻습니까?

     대구고등학생 전국최고의 학습능력
박철언:네, 물론이지요. 우리가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서울의 중앙교육평가원에서
          전국 고등학교의 학습능력도를 측정한 것이 발표가 됐습니다. 그런데, 대구의
          학생들이 전국 최고로 나왔습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우리 지역의 희망을
          얘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우리 지역경제를 살리려면 오늘은 지식정보산업시대이니까, 국내외의 큰
          지식정보산업을 이곳에 대대적으로 유치해 와야 하고, 유치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불교, 유교, 가야문화의 문화인프라 개발, 복원해야
          또, 대구경북지역은 문화인프라가 많습니다. 유명한 사찰, 절을 중심으로 한
          불교문화, 도산, 소수서원 등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 그리고 가야 문화 등의
          엄청난 문화 인프라를 잘 복원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요즘 21세기에는 굴뚝산업 보다도 문화산업, 관광산업, 문화 인프라의 부가가치가
          높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문화 인프라를 잘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구 고산지역을 세계적인 관광레저타운으로
          특히, 대구 고산지역은 지금 개발제한지역으로 많이 묶여 있는데, 단계적으로
          풀어서 세계적인 ‘관광레저타운’화 하는 방안도 좋은 방안으로 생각합니다.

     대구공항을 명실상부한 국제공항으로 
          물론 장기적으로는, 대구공항도 명실상부한 국제공항으로 갖추어야 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안을 통해서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지만, 사실상 말만 백번하면
          뭐합니까? 실천이 중요하죠! 가령, 여러 곳에서 차트 발표식이나 세미나 식으로
          이런 것을 하면 된다고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모두가
          합심협력하고 강력한 구심점을 중심으로 해서 해내는 실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북 방 정 책]

남성희:실천만 따르면, 미래는 희망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과거로 좀 돌아가 보면
          어떨까요? 과거에 박 전장관께서는 대북 정책과 한중 수교에 있어서는 아주 많은
          역할을 하신 빼놓을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전 외교 부장이었던
          첸치천 부장이 회고록을 통해서 이런 말을 했어요. 박 장관께서 대북 북방정책을
          추진할 때, 순금 열쇠를 갖다 주었다.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그게 전혀 과장되거나 착각한 것이라고 반박을 하셨습니다
          마는, 지역민들은 굉장히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을 주었다, 안주었다, 이런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오신 김에 좀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시면
          어떨까요?

박철언:허허! ‘순금열쇠’하니까, 무슨 ‘금송아지’라도 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흔히
          일반 금은방에 있는 행운의 열쇠입니다. 일반회사에서도 외국 귀빈이 오면 보통
          크면 1냥, 10돈 정도 작으면 너 댓돈 정도 되는 행운의 열쇠를 주고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제가 첸치천 외교부장을 만나게 된 경위는 제가 운영하던 북방정책
          연구소의 소장으로 있는 나창주 의원이 외교부장의 친동생인 천진 부시장하고
          교분이 두터웠습니다. 그리고 북방정책연구소 하고도 연관이 많았는데, 연락이
          오기를 자기 형인 외교부장이 서울 가는데 북방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박철언
          장관을 만나보면 좋지 않겠는가? 이렇게 제의가 들어와 약속이 되어서 저녁 늦은
          시간에 만났습니다.

          제가 미수교국 인사를 많이 만나지 않았습니까? 북한 요인들은 물론이고, 중국,
          소련, 헝가리, 체코, 베트남, 라오스 등의 많은 요인들을 만나면서 통상 처음에는
          작은 선물을 교환하고 수교를 위한 얘기를 진행합니다. 통상 제가 애용하던 것은 
          인삼, 홍삼, 토속공예품, 행운의 열쇠 이런 것들입니다.

          그 날 저도 외교부장으로부터 작은 화폭인지 족자인지 기념품으로 받은 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런 선물은 사비로 합니다. 제
          개인 돈을 들여서 북방정책을 한다고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땐 이미
          한중수교가 거의 무르익은 때이고, 첸치천 부장은 외교부장이 된지 3년밖에 안되는
          어떻게 보면 저는 그보다 훨씬 윗선인 정치국상무위원으로 있는 이서환, 나중에
          정협 주석까지 된 사람이 저의 비밀 라인으로 그 훨씬 전부터 접촉을 계속하고
          있었으니까, 첸치천 부장과 새로 라인을 구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때 중국 측에서 수뇌부가 북한을 의식해서 수교 분위기는 이미 무르익었
          는데 수교를 늦추고 있는 상황이라서, 외교부장한테 너무 북한 눈치 보지 말고,
          빨리 수교를 해야 한다. 그것은 중국, 한국, 아시아의 평화, 그리고 북한을 위해서도
          빨리 수교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얘기하고, 첸치천 외교부장도 자기도 함께
          노력하겠다. 좋은 화답이 있었고 그런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남성희:얘기가 나온 김에 당시 91년이죠, 최대의 뉴스에 관심사였던 한중수교의 막후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하면 그때 수교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중공이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금단의 땅으로 여겨졌는데, 어떻게 해서 박 장관께서
          그곳을 들어가게 됐는지? 처음 중국하고 접촉은 언제부터 시작이 됐는지? 그리고
          그 한중수교에서 첫 역할을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1985년 북방정책팀 만들어
박철언:제가 북방정책을 처음 맡아서 추진하게 된 것은, 1985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5년 3월에 제가 안기부장의 특별보좌관에 임명이 되고 제
          아래 ‘북방정책팀’이 만들어 집니다. 처음에는 대북비밀접촉문제에 집중해서  
          하다가, 그것이 범위가 넓혀져서 공산권 수교문제, 북방정책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게 되고,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북방정책이
          가동됩니다.

     1987년 중국요인과 첫 접촉
          제가 중국요인과 처음 만난 것은 1987년 7월로 기억이 됩니다. 그 당시 제가
          아시아태평양법률가협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해서 교석 부총리, 후에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기율검사위 서기를 한 분으로, 중국국가 서열 4위까지 오릅니다.
          이 분과 만나서 얘기를 나누게 되고, 그렇게 접촉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비밀라인
          창구는 2년 후인 1989년 8월에 중국의 이서환 정치국 상무위원이 있습니다. 나중에
          정치협상 주석까지 한 중국국가 서열 5위에 오른 분이죠. 이 분하고 창구가 열려서 
          한중수교의 당위성에 대한 대화가 깊숙하게 진행이 되는데, 장백발 북경시 상무부
          시장이 실무창구로써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접촉이 진행되어,

          오소저 체육부 장관, 진희동 북경시장 겸 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원 장, 차관급 
          인사들과 많은 접촉과 대화를 통해서 한중수교를 빨리 해야 된다. 그래야 아시아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는 게 아니냐. 또 양국번영을 위해서도 그런 것
          아니냐. 그래서 분위기가 굉장히 무르익게 됩니다.

     90년 북경아시안게임 때 북경대학교 특강
          90년 9월 북경에서 아시안게임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중국에 들어가 요인들과
          접촉하고 또 북경대학에서 특별강연을 하고, 인민일보사까지 방문해서 언론인들
          하고 깊은 대화를 하고 수교분위기가 많이 조성되고, 다음해 91년 1월과 4월에
          무역대표부가 교환됩니다.

     등소평 등 중국수뇌부 7명에게 편지 보내
          91년 7월에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서환 상무위원하고 장백발 부시장이
          저한테 하는 얘기가, 이제 상당한 장 ․ 차관 급들은 다 수교 당위성에 대해서
          인정을 하는 데, 문제는 등소평 선생 그리고 양상곤 국가주석, 강택민 총서기 등
          국가 수뇌부에 해당하는 분들이, 박 장관이 직접 만나면 좋겠지만 북한의 눈도
          있고 하니, 자기들 생각은 자기들한테 한 얘기를 좀 편지로 자세히 써서 주면
          자기들이 중국 최고 수뇌부 일곱 분에게 전달을 하겠다는 제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이제 때가 왔구나 하고, 며칠 밤을 새워서 등소평 선생을 비롯해
          강택민 총서기, 양상곤 국가주석, 만리 상무위원장, 이붕 총리 등 지정해 준 일곱
          분한테 장문의 편지를 쓰게 됩니다. 

          이게 바로 그 때 등소평 선생에게 써서 보낸 편지입니다. 중국어로 16페이지 이고
          우리 국어로 10페이지 도합 26페이지의 장문의 편지인데, 극도의 보안리에 당대의 
          명필을 구해 붓으로 직접 써서 일곱 분에게 보내게 됩니다.

          그 후에 수뇌부에서 온 반응이 “공감한다” 긍정적인 화답이 왔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91년 가을경에는 수교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 북한 눈치를 봐서 북한을
          설득할 시간을 달라고 해서 다음해 8월에 정식으로 수교가 됩니다. 아마 수교 한 달
          전 92년 7월에 외교부장이 북한에 가서 김일성 주석한테 설명하고 해서 양해를
          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성희:이 편지는 저희 프로에서 처음 공개하시는 건가요?

박철언:예, 그렇습니다.

남성희:그렇군요. 한중수교의 한 축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편지 공개와 같은 여러 가지
          기억할 만한 에피소드가 남을 것 같은데, 하나 소개를 해 주시면 어떨까요?

     박철언 실종사건
박철언:사실 기막힌 사연들이 많았죠. 생각나는 것은 1990년 9월의 북경아시안 게임을
          갔을 때입니다. 그 때 우리나라의 여러 장관들 하고 안기부장도 같이 가서
          비행기를 타고 북경공항에 내렸는데,
          저는 비행기에서 내리기도 전에, 저의 비밀라인에서 공안요원 2명을 보내 저를
          경호해 공항 밖으로 뽑지 않고 바로 비밀숙소로 몰아가는 통에 밖에는 저와
          요인들이 온다고 수십 명의 기자들이 운집해 있다가 안 나오니까, ‘박철언 장관
          실종’ 됐다며 찾느라고 야단이 나고, 본국에서도 신변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가 오고 난리를 쳤습니다.

     술에 얽힌 에피소드
          또 한 가지 기억나는 일은 북한도 그렇습니다만, 중국이나 공산권 사람들은 술이 
          아주 셉니다. 저는 술이 좀 약한 편인데, 회담 마치고 식사 시간 때는 술을 권하게
          되는데 그 독한 위스키나 뱀술 등을 맥주잔으로 막 돌려가며 주거니 받거니 하니까
          견딜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저는 공산권에 비밀출장을 다니면서 미리 술 안취하는
          약을 부탁해서 작은 정제로 만들어 가서 미리 먹었는데, 너무 많이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니까, 어떤 때는 화장실에 가서 몰래 다 토하고 또 태연하게 회담을 해야하는
          고통에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그런 기억이 납니다.

남성희:그러셨겠네요. 그런 약도 있는지 몰랐습니다.

박철언:약도 많은 술이 들어가니까 별 효험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남성희: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뛰어난 협상력을 보여주셨어요. 대북관계하면 사실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무척 중요한 일인데요.
          지금은 정부와 온 국민이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있고, 또
          많은 정치인 언론인들, 문학 인사들이 서로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 때만
          해도 전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철언:대통령의 전권을 위임 받은 비밀특사로 1985년 전두환대통령 시절부터 1991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까지 7년간 남북간 및 도합 42차례의 비밀접촉이 있습니다.
          상호주의로 왔다갔다 물론 1~2차례는 외국에서 했습니다. 제가 비밀출장 20번을 
          북한 땅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주석을 비롯한 북한요인들과 민족문제 많이 다루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데 한번 회담이 짧으면 새벽에 가서 밤에 돌아오고, 길면 3박4일, 판문점
          북측지역을 비롯해서 개성, 평양모란봉초대소 백화원초대소, 백두산의 삼지연의
          김일성주석 별장, 이런 여러 곳 에서 회담을 하는데,

     유서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쓴 사람
          밀사란 것은 안보내주면 못 오죠. 서울을 떠날 때마다 혹시 못 돌아올지 모르니까
          유서를 써 이층 서랍 속에 넣어두고, 제 집사람에게 예정된 기일에 돌아오지 않으면
          편지를 꺼내보라 하고 떠나야했죠. 귀국할 때까지는 정말로 조바심 초조 불안 잠 
          오지 않은 새벽 긴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유서를 제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쓴
          사람 중에 하나일겁니다.

남성희:대북관계를 생각하면서 또 대미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현재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의 태도에 대해서도 너무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거든요? 이렇게 볼 때, 박 전장관
          께서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어떻게 생각하시고, 우리 정부를 비롯한 주변국들이
          앞으로 어떻게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아시아정책의 2가지 기둥-중국과 일본의 견제
박철언: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생각됩니다.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미국이 패권 일방주의, 슈퍼파워를 가졌잖습니까.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2가지
          기둥은 제가 보건데 중국이 정치 , 경제 , 군사 대국화 해서 장차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견제하는 것을 첫 번째의 목표로 합니다.

     중국 , 일본을 견제하기위해 북한 핵을 못가지게
          두 번째는 일본을 계속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두고 그래서 일본으로 하여금
          아시아에서 일종의 ‘리딩컨츄리’로서 역할을 주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북한 핵을 못 가지게 하는 이것이 미국의 국가 이익이고, 계속적인 패권 추구를
          위해서 그런 노선을 취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죠.

          미국의 북한에 대해서 최대목표는 핵을 영구 폐기시키고, 김정일 체제 바꾸고
          거기를 친미 정권으로 만든다면 중국 견제에도 좋고 미국으로서는 좋은 일이겠죠.
          또 북한으로서는 핵개발을 계속하면서 체제 보장받고 서방으로 대폭지원도 받는
          이런 최고 목표가 있죠. 지금은 미국과 북한이 이런 서로가 최대의 목표를 위해
          좀 심하게 격돌을 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가 보면 일괄 타결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에 대한 서방의 경제지원보장과 북한 핵의 영구 폐기
          우리가 단기적으로 본다면 일괄타결을 해서 북한의 체제 보장과 서방의 경제
          지원은 어느 정도 보장해주고 또 북한은 영구히 핵을 폐기하고 이런 방향으로
          일괄 타결 하도록 주변국들이 한 목소리를 내어 북한과 협상도 하고 압박도 넣고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지금도 미국이 평양에 선제공격할 가능성이 있느냐,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예컨대 북한이 핵 보유 의사를 계속 고집하고, 또 반미 중국 ․ 북한의 연대가
          강화되고 이런 상황에서는 미국의 한국에 예고하지 않는 평양 선제 폭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일괄 타결안이 타결되는 방향으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가가 북한을 계속 설득하고 또 압박해야 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세계가 다원주의로 견제와 균형 속에 조화로운 발전
          장기적으로 본다면 세계가 너무 어느 특정국의 일방주의, 일국주의로 가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 공동선의 추구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공동선이라 한다면 
          자유, 평등, 평화, 인권, 복지 이런 인류의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가
          다원주의로 서로가 견제와 균형을 해야 조화로운 발전이 가능 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 이외에도 EU가 조금 내실화해서 어느 정도 파워를 가지고
          동아시아 세 나라 한반도, 중국, 일본이 좀 연대를 해서 아시아적인 이익과 가치를
          지키는, 그러면 조금 다원주의로 균형이 취해지지 않겠는가 생각됩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그런 패권주의와 동아시아 삼국연대가 이루어진다면
          연대간의 조화와 갈등 이것을 어떻게 조정해 가느냐가 과제가 될 수 있겠죠.

          그러나, 현재 미국은 초강대국입니다. 국제 권력정치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미국하고 맞수 뜨듯이 골목에서 팔소매 걷어붙이고 반미면 어떠냐? 이렇게 나가면
          나라와 국민한테 득 될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내부적인 역량, 힘을
          기를 때까지 계속 미국하고 잘 지내면서, 특히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핵심 인사들은
          참아야 됩니다. 표면상 반미 발언을 자제하면서 미국을 잘 설득해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되는 것이 현명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남성희:네, 그건 국제적으로 그렇다고 치고 남북문제만 나오면, 걱정스러운 것이 이른바
          ‘남남갈등’입니다. 진보와 보수, 두 진영으로 갈라져서 도저히 타협점을 찾을 것 
          같지 않게 보이는 데요, 어떻게 이런 좌우의 이념 갈등을 극복하면서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보수, 진보 모두가 편화통일 바래
박철언:남남갈등이 현재는 대단히 심각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집권수뇌부가 민족문제를 다루면서 각계각층의 국민들과 좀더 진솔하고
          깊은 대화가 미흡한데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보수든, 진보든 조국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바라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막연한 피해의식이나 막연한 우월감 이런 걸 가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제는 우리가 국력에 있어서도 국민총생산은 북한의 25배입니다. 일인당 국민
          소득은 12배나 됩니다. 또 외교적으로도 우리가 절대 우의에 있습니다. 때문에 이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우리가 주도한다는 그런 역사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좀더
          넓은 마음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야 됩니다.

          우리 보수가 걱정하는 것은 이러다가 공산화 되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실상을 그대로 얘기하면서 이해를 구하면 이해될 수 있다고 보고, 또 우리
          집권세력이나 급진․진보 파에서 그런 나라 걱정을 하는 보수 쪽을 수구, 부패,
          기회주의자, 반동이다 이런 식으로 그런 편협한 시각으로 몰아붙이면 절대로
          안 됩니다.

          다같이 나라걱정 민족걱정 하는 입장이니까 깊은 대화를 통해서 이 남남갈등은
          해결되어야 하고 저는 해결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시 인 박 철 언]

남성희:한중 수교사와 북방정책에서 중요한 무거운 역할을 하셨기 때문에, 정치문제
          그리고 통일문제 무거운 화제에 대해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좀 가볍게 가볼까
          합니다. 시인 박철언 들어 보셨습니까? 책을 쓰는 정치인은 많이 봤습니다만, 
          시를 쓰는 정치인은 듣기 어려운 일인데요, 시를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시를 쓰셨나요?

박철언:중 , 고등학교 때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저도 고등학교
          시절 청맥이라는 서클을 만들어서 동호인 회지도 내고 시도 쓰고 했습니다만,

          시인으로 등단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 집권초기에 제가 내각제문제로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치열한 반대 투쟁을 하다가 정치보복대상1호 구속대상1호로
          지목되어서 감옥살이 1년 4개월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옛날 같으면 사약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는데…, 1년 4개월 한 평도 안 되는 감옥 독방에서 살았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에는 그래도 제일 기쁜 게 하루에 한번 있는 면회 시간입니다. 
          그때 제 수인번호가 4077입니다. 아침에 교도관이 와서 “4077면회 왔습니다!” 하면
          가장 기쁩니다. 교도관을 따라 통속 같은 방을 나와서 어둡고 긴 복도를 거쳐서
          면회실에 가면 두터운 플라스틱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과의
          만남이죠, 7분간의 짧은 만남입니다. 그러나 가장 기쁠 때고...

          10년 전 꼭 이맘때로 기억이 됩니다. 늦은 가을인데 그 때 제가 면회를 마치고 
          교도관을 따라오면서 무심코 창살 너머를 보니까 거기에 국화꽃이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을이구나!” 느끼면서 향기가 맡고 싶어서 교도관 양해를
          얻어서 쇠창살에 코를 대고 심호흡하면 오지 않겠나..., 그러나 숨이나 가쁘고
          꽃내음은 닫지 조차 않았습니다.

          그래서 갇힌 자의 슬픔이구나 생각이 되어서, 그날 밤에 제가 저 방에서 우리
          집사람한테 쓰는 엽서에 시를 썼습니다. ‘감옥의 국화꽃밭’이라는 시를 써서
          내보냈는데, 그것이 어떻게 원로 시인들이 보고, 조병화, 박재삼 이런 원로
          시인들이 제가 감옥살이하니까 불쌍해서 그런지 시인으로 등단시켜서 정식으로
          되게 되었죠.

남성희:그렇군요. 감옥 속에서 국화꽃 향기...자유에 대한 갈망 같은데요. 어떤 내용인지
          낭송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박철언:10년 전의 시인데 낭송해 보겠습니다.

                                           감옥의 국화꽃밭

                                                                       박 철 언(靑民)

            창살 너머 저기
            십자가 보이는 온실 앞 조그만 뜰에
            둥근 네모진 길다란 화분들에 
            어느샌가 국화꽃이 피어 있다. 

            흰색 노란색 보랏빛 붉은 색깔의
            높고 낮고 줄기 위로 더미를 이루면
            이름없는 죄수들이 말없이 가꾸어낸
            국화꽃밭이 가까이 멀리서 눈길 모은다.

            높은 담 속 감옥뜰에
            죄 많다는 이들의 손길로도
            여름천둥 가을무서리 견뎌내어
            어찌 저리 자태를 뽑내는가.

            그윽한 그 향내에 취하려
            창살에 머리 대고
            기를 쓰고 심호흡 거듭해도
            숨이나 가빠질 뿐 꽃내음은 닿지조차 않는다. 

            참새가 까치가 고양이가
            날고 뛰고 걸으며
            여름 해바라기 뽑혀 나가고
            마지막 몇 그루 코스모스마져 잘려버린
            이제는 국화꽃 뒤덮으니 저녁 뜰을 차지한다.

            안개 낀 아침에, 가을비 주말 오후에
            인적없는 뒤뜰, 창살 너머 국화꽃
            한평 우리 속, 갇힌 자의 찢어진 가슴이여
            향기조차 맛볼 수 없는 외로운 영혼이여.

남성희:네, 절절했던 느낌을 제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도 시를
          쓰시겠죠? 주로 언제 시를 쓰십니까?

박철언:시라는 것은 어떤 시대 어떤 순간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한 인간의 삶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러다 보니까 근무시간, 공직생활 하느라고 거의 못 썼습니다.
          한밤중이나 아니면 이른 새벽 산책길... 뭔가 깊은 상념에 젖어서 쓰곤 하죠.

남성희:시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예술 방면에도 조예가 깊으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몇몇
          분들이 박 전장관님을 극장에서 봤다고 하거든요, 영화관에 자주 가십니까?

박철언:가족이나 가까운 자원봉사자들 하고 연극이나 영화나 또 아니면 뮤지컬, 춤이나
          이런 공연을 비교적 자주 가는 편입니다. 

          얼마 전에 황산벌이라는 우리영화를 봤는데 아주 무거운 주제 아닙니까? 계백장군
          하고 김유신 장군하고 싸우는 무거운 주제를 아주 코믹하게 또 걸쭉한 사투리까지
          넣어서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또 시사하는 대목도 상당히 있습디다. 끝 부분에
          기억이 남는 게 계백장군이 황산벌 싸움에 나가면서 자기가족을 전부 죽이고
          가지 않습니까?

          거기서 하는 말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러니까, 아내가 하는 말이 되받아서 하는 말이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다!” 이런 얘기를 코믹하게 담았던데,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있었습니다.

남성희:가족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전(前) 현의원께서는 어떻게 지내십니까?

박철언:제가 1년 4개월을 감옥생활 하는데 우리 집사람이 옥바라지하고 저 대신 지역구에
          나와서 선거 치르고 의정활동 2년여하고, 고생이 많았죠. 또 의정활동 하는 중에는
          ‘의정활동 베스트5’에도 끼어가지고, 지역하고 국회에서 인기가 많아서 지난 15대 
          총선 때 저한테 자리양보 안할 까봐 제가 은근슬쩍 걱정했는데 가정주부로 
          돌아가겠다. 이렇게 해서 양보를 받았습니다.

           요즘은 아이들 돌보고 나병환자, 근육병환자 들을 오래전부터 돕는 자원봉사 활동
           하고 있는데, 제가 한 30년 좀 소홀 했던 점이 많았기 때문에 요즘 피곤하다고 하면
           어깨도 주물러주고 점수 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성희:남자는 나이가 들면 죽어지낸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게 현실로 나타나는군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얘기 듣다보니 벌써 예정된 시간이 다 되었군요. 마지막으로
          대구, 경북 지역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박철언:여러분께서 정말 힘드신 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그토록 많이 성원해주셨는데 제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해 정말 너무
          죄송합니다.

          지금 나라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더구나 대구는 너무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풀잎에 맺힌 이슬을 보고서도 우리가 그 희망을 그 적은 희망을 붙들어서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새 역사를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합심해서 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유구한 민족사에 있어서, 특히 조국근대화에 과정에 있어서 대구,경북인이 
          보여주었던 그 역량, 그 자존심을 되찾아야 합니다. 

          미력하지만은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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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야권단일후보 단일화, 정권교체 가능하다(신동아, 1997. 2)      관리자 2008/09/02 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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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박철언씨 표적수사 지시(동아일보 / 98. 2. 4)      관리자 2008/09/02 4410  
7  "어머니"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찡해오고 (월간 "순수문학"지 기고문)      관리자 2008/09/02 4731  
6  슬롯머신 사건의 진상(신동아 / 95.5 / 유수호 변호사)      관리자 2008/09/02 7024  
5  "SBS 박경재의 전망대" 라디오 인터뷰(2002.10.25)      관리자 2008/09/02 4796  
4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초청특강(1998. 11. 3.)      관리자 2008/09/02 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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