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법학연구의 외길을 걸으신 세계적 헌법학자 김철수 선생님께서 지난달 26일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1933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중고·서울대 법학과를 졸업, 서독 뮌헨대에서 수학하고 서울대·국민대 교수로, 탐라대 총장을 거쳐 명지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로 재직하셨고 서울대 법학연구소장,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일본 히토쓰바시대 초빙교수, 한국공법학회장, 한국헌법연구소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으로 봉직하기도 하셨습니다.
고교·대학교 9년 선배이기도 한 김철수 선생님과 첫 인연은 대학 시절 그분의 전 아내 전혜린 선생(불꽃같이 살다 31세 자살한 천재 문학가)을 지도교수로 하여 독문학을 공부하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저는 장차 교수가 되고자 했기에 사법대학원 재학시절 선생님 연구실에 무급 조교로 있었는데 언제나 검소 근면 겸손하시며 늘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기본적 인권의 불가침성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파하시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69년 여름 선생님은 당시 27세였던 저에게 22세 현경자를 소개했습니다. 1970년 1월 결혼하여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52년을 함께 생활하고 있으니 대단한 인연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학문적 정열을 흉내내다가 저도 헌법학분야의 석·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정치 현장의 격류에 휩싸여 있던 저는 나라 운영과 헌법, 법치에 관한 의문이 있을 때 자주 선생님께 전화를 걸면 선생님은 언제나 자상하게 소중한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1972년 10월유신 이후, 이듬해 1월 책을 펴내실 때 "유신헌법은 현대판 군주제"라고 쓰셔서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1주일 만에 풀려났는데, 책은 두 번의 몰수와 세 번의 수정 후에 겨우 나오게 되었고, 강의와 집필이 금지되는 바람에 1973년 3월 출국하여 미국 독일 등지에 방문 교수로 떠돌아다녀야만 하셨지요. 미국에서의 망명 권유도 마다하시고 귀국한 이래 현실참여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관된 연구 활동의 외길에 전념하셨습니다.
제가 법대 졸업 무렵 '수석졸업'이라고 첫 소식을 알려 주면서 기뻐해 주시기도 했지만, 졸업 후 50여년간 명절 때면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하고 난초나 과일선물로 인사를 가름해도 꼭 답례품과 감사전화를 해 주시던 선생님!
올해 설 명절에는 배 한 상자를 보내주셨기에 감사전화 드리면서 앞으로는 금호법학회(제자들 모임)에 자주 나가겠다고 약속 드렸습니다만 불현듯 떠나셨다는 비보를 받고 황망히 달려간 장례식장에는 대통령의 조화, 대통령 당선인의 조문과 조화 그리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많은 후학들이 선생님을 추모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국회는 정치투쟁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 타협을 하는 곳이다' '의원 내각제로 개헌하여 평화통일의 초석을 깔아야 한다'고 선생님은 늘 걱정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제자들이 더욱 노력하겠사오니 부디 걱정하지 마시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