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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YS와 대립 박철언 전 장관 “감옥서 詩를 썼고, 그 뒤로 털었다”
“그때 감옥에서 난 시를 썼다. 그 뒤로 다 털어버렸다.”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23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타계 소식에 “어떻든 이 나라 민주화와 문민정부 시대를 여는 데 큰 역할을 한 고인에게 편안함이 있기를 바란다. 명복을 빈다”고 담담히 말했다.

박 전 장관은 “감옥에서 정치보복은 내가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덕분에 시인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전 장관은 지금도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북한과 동유럽에 대통령 밀사로 파견되는 등 노태우 정권의 최고 실세였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미래 권력을 놓고 대충돌했다. 바로 ‘내각제 파문’ 이다. 3당 합당의 전제였던 내각제 도입을 김영삼 대표가 파기했다는 점을 파고 들었다.

박 전 장관은 “내각제를 굳게 약속하고 합당했는데 그 약속이 없다고 하고 공작정치라고 했으니,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는 것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YS는 극력 반발했다. 박철언을 후계자로 삼는다면 반정부 투쟁을 하겠다고 압박해 왔고, 노태우 대통령은 결국 굴복했다. 1992년 5월 김영삼 대표는 민자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 그해 14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당선된 박 전 장관은 민자당을 탈당했고,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아닌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를 지원한다.

박 전 장관은 이듬해인 1993년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으로 유죄선고를 받고 1년6개월간 복역한다. 당시 검사는 홍준표 현 경남도지사였다. 역시 검사 출신인 박 전 장관은 슬롯머신 사건은 전형적인 정치보복으로 무죄라고 항변했다.

1994년 박 전 장관의 궐위로 보궐선거가 치러진 대구 수성갑에는 부인 현경자씨가 출마해 당선됐다. 지역 민심의 답변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복권돼 1996년 총선에서 자민련 후보로 출마해 정계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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